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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치료와 면역치료의 시너지는 가능할까?핵의학분과 세부편집장, 핵의학 과장 변병현2019-05-28

시너지의 힘

 

  어렸을 적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기억이 있다. 한 마리씩 있을 때는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개미들이 집단을 이루게 되었을 때 일어나는 기적은 1 더하기 1이 2가 아닌 3 또는 그 이상이 될 수 있는 ‘시너지’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개미뿐 아니라 인간도 오래 전부터 시너지의 힘을 잘 알고 있었는지 현, 금관, 목관악기 등을 조화시켜서 경이로울 정도의 감동을 느끼게 하는 한 차원 높은 음악을 만들어낼 줄 알았고, 전화기에 터치형 LCD 패널과 GPS 장치들을 붙여서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똑똑한 기계를 발명해내기도 했다.

 

  의학 분야로 시선을 돌려보면 PET/CT라는 영상진단장비에서 시너지의 예를 찾아볼 수 있는데, PET과 CT를 함께 촬영, 융합한 영상을 보고 있으면 PET과 CT를 각각 보았을 때는 알기 어려운 병변의 상태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많은 논문들에서 PET과 CT를 별도의 창에 띄워 판독할 때보다 fusion 영상을 만들어 한 화면에서 판독하면 진단능이 향상된다고 보고하고 있다).

 

방사선치료와 면역관문억제제 – 가능성

 

  2012년 전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의학저널 중 하나인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흥미로운 임상 증례가 소개되었다. 33세 악성흑색종 여성이 흉막, 림프절, 비장에 전이가 있어서 면역관문억제제 치료를 받았다. 1년 간의 치료에도 불구하고 전이 병소들의 크기는 점점 더 커졌고, 주치의는 병소의 크기가 특히 커진 흉막에 방사선치료를 시행하였다. 이 기간 동안 면역관문억제제 치료는 지속하였다. 방사선치료 3개월 후 흉막의 크기가 줄어든 것을 CT로 확인하였는데, 놀랍게도 흉막 외에도 방사선치료를 시행하지 않은 림프절과 비장의 전이 병소들도 크기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수시로 혈액검사를 통해 T-면역세포와 항원제시 정도의 변화를 관찰하였는데, 방사선치료 후 두 가지 수치모두 급격하게 증가한 것을 확인하였다.

 

  2000년대 이후 ‘제3의 항암제’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암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면역관문억제제의 치료 기전은 기본적으로 ‘암세포가 체내면역을 억제하는 신호를 억제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중부정은 강한 긍정인 것처럼 면역관문억제제는 암세포에 대한 체내면역을 증진시켜서 암세포의 사멸을 유도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암세포 표면의 항원이 제시되는 정도와 제시된 항원에 대해 체내 T-면역세포가 반응하는 정도가 강할수록 치료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앞서 살펴본 악성흑색종 환자에서 방사선치료 후 방사선치료를 받지 않은 림프절과 비장의 크기가 줄어든 것은 방사선치료 이후 면역관문억제제 효과가 증가할 환경(T-면역세포와 항원제시 정도 증가)이 조성되었기 때문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이후 이와 유사한 증례들이 다수 보고되었고, 방사선치료가 면역관문억제제 효과를 증가시킬 수 있는 환경을 유도한다는 비임상 연구결과들이 뒷받침되었다.

 

  좀 더 직관적으로 생각해보면, 방사선치료에 의해 암세포들이 손상되면서 종양덩어리 내부에 숨겨져 있던 암세포 항원들이 표면으로 튀어나오게 되는데 이들 중에는 면역관문억제제의 표적이 되는 항원들이 다수 포함되므로 그만큼 암세포에 대한 면역작용이 강화되어 치료효과가 향상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에 따라 현재 면역관문억제제 단독치료와 면역관문억제제+방사선치료의 임상시험들이 다수 진행 중에 있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방사성동위원소치료와 면역관문억제제

 

  같은 원리로 방사성동위원소치료와 면역관문억제제의 조합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현재까지 FDA로부터 승인된 면역관문억제제들은 악성흑색종, 폐암, 위장관암, 두경부암 등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비해 방사성동위원소치료는 갑상선암, 신경내분비암, 전립선암, 비호지킨 림프종 등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면역관문억제제의 대상 암종을 확대하기 위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어서 전립선암에 대해서는 이미 다수의 임상연구들에서 유효성이 확인되었고, 최근에는 비호지킨 림프종에서도 매우 유망한 면역관문억제제가 개발되었다. 방사성동위원소치료 측면에서도 대장암에 대한 방사면역치료 기술은 이미 보고된 바 있고, 향후 알파핵종치료를 이용하면 고형암들에 대한 적응증도 늘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방사성동위원소치료는 전신의 암을 표적으로 하는 치료이기 때문에 원리적으로도 한 부위의 암을 공격하는 것보다는 암세포의 항원제시를 보다 활성화시킬 수 있을 것이므로, 방사성동위원소치료 시 일반적인 방사선치료보다도 면역관문억제제와 좋은 시너지를 보일 가능성도 있다.

 

  면역관문억제제는 다수의 암종에서 기존 치료에 반응하지 않던 환자들에게 드라마틱한 치료효과를 나타내며 생존율 향상을 가져오고 있다. 하지만, 치료 반응률이 암종에 따라 10~50%대에 불과한 것이 단점인데, 반응률이 낮은 것은 암세포에 따라 항원제시 정도가 약한 것이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방사선치료로 암세포의 항원제시 정도를 높여서 면역관문억제제의 반응률을 향상시킬 수 있을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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