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선생의 과학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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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불편한 이중생활김정영(선임연구원,한국원자력의학원)2019-04-23

  메마른 봄 날씨는 지난 4월 4일(2019년) 오후 7시경에 고성군의 산불을 부추겨 속초시 지역에서 순식간에 옮겨갔다. 이 무서운 불은 산림과 주택지역을 강타하여 530 헥타르(축구장의 700배)가 잿더미로 변했고 안타깝게도 사망 2명과 부상 10명이 발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산불을 진압하기 위해 올라온 각 지역에 소방관들의 모습은 어느 국가대표의 스포츠 경기와 못지않은 감동과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물론 산불을 진입하기 위해 일반 공무원, 의용소방대, 군부대, 경찰, 국립공원 직원 등까지 합쳐져 1만영이 넘는 진화인력이 투입되었고, 헬기는 약 45대, 소방차는 약 77대 등이 밤새 활약을 했다. 산불 진압 이후, 아픈 상처는 그대로 남지만 그 거대한 불에 맞서 자신의 임무를 죽을 각오로 행하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다시 희망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국가(직) 전환에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였다. 이것은 ‘소방관 국가직 전환’의 논란을 뒤로 하고도, 그들의 인간, 경제, 사회적 가치를 모두 생생하게 국민들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 커뮤니티 사이트 보배드림에 4월 5일 올라온 게시글 '속초로 향하는 영웅들 ㄷㄷㄷㄷ'. 사진=보배드림 갈무리 >

 

  최근 미국에는 사설 소방서비스가 등장하여 일부 부유층은 소방서비스를 별도로 받는다는 뉴스를 들었다. 미국은 정말 자본주의가 발달한 나라구나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미국은 이라크 전쟁의 말기에 가면 군대조차 민간 경비업체에게 맡겼고, 그 지출비용도 매우 컸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2012년 리비아를 무대로 그들의 활약상을 다룬 영화(13시간, 감독: 마이클 베이, 2016년)도 개봉하였다. 그렇다, 우리 생활에서 이미 강도와 같은 자영업자의 안전은 경찰보다 민간 경비업체(피해보상까지 포함)가 담당을 더 많이 하고 있고, 일부 가정집에서 부쩍 민간 경비업체의 서비스(인터넷과 결합하여)를 다행한 형태로 받는 서비스가 확장되고 있다. 가끔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90년대초까지)에 동네를 누비던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방역차는 이제 해충을 박멸하는 민간업체들의 등장하면서 볼 수 없게 되었다.

  국제판 위키피디아을 보니, 우리나라는 경제규모가 세계 11위가 되는 나라이며, 그 어느 나라 못지않게 자본주의의 가치를 실현하는 세계적인 국가가 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IMF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민영화’라는 단어는 절대 선(善)처럼 인식되어 아직까지도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민간이 하면 더 잘하고 경제적 이익을 더 낸다는 믿음, ‘민영화’는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를 많이 바뀌어 놓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 부작용이 곳곳에서 발생을 하고 있다. 이것은 산불을 진압하는 공무원들처럼 경제적 효율성의 원리가 전혀 다르게 작동하는 영역들이 많기 때문이다. 4월 16일을 지나면서, 우리는 또 다시 세월호 사고를 떠올린다.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가, 혹은 민영화의 한계가 무엇인가를 절실하게 볼 수 있는 사건을 보며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의 한계를 보게 된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에서 이런 문구가 나온다. “최고의 시대이자, 최악의 시대였다.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시대였지만 믿음을 수 없었고, 빛의 계절이었지만 암흑천지였다. 희망의 봄이 왔지만, 절망의 겨울이 계속되고 있었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아무 것도 갖지 못한 시대이기도 했다. 모두들 천국을 향해 나아갔지만, 정작 우리가 향한 곳은 그와는 정반대 방향이었다.” 찰스 디킨스는 당시 19세기 산업혁명으로 달라지는 과학기술과 문명사회에 대한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였다. X-선생은 과학기술의 위험성이나 이중성을 강의할 때 위의 문장을 자주 인용하고 있다. 그렇다, 기술의 발전과 경제적 성장이라는 단어는 매우 어울리기도 하지만, 그 결과는 전혀 반대 방향에서 일어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으로 사례로 설명한다.

  우리는 어릴 때 과학자를 지적 호기심의 최고 직업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교육받고 그에 못지않은 본능도 움직였다. 요즈음 초등학생들에게 유튜브 스타가 직업군 1위로 조사되는 시점에도 과학자는 항상 상위권을 차지하는 직업이다. 유년시절, 우리에게 과학자는 지적 호기심을 기반으로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키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 과거 유로화 이전에 유럽의 지폐들은 과학자들이 많이 등장했었다. - 과학자는 소방관이나 경찰관처럼 인류를 위한 헌신과 봉사로 만들어지는 직업군이며 사람이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과학계에 입문하면, 새로운 상황이 우리 앞에 놓이게 된다.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돈과 시설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그 무엇보다 독한(산업혁명 시대?) 자본주의의 굴레 안에 들어가게 된다. 과학기술을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한 대학원은 등록비가 비싸다. 국내외 모두 다. 세상과 무관하게 과학기술을 공부할 수 없다. 과학자도 생물이고 의식주는 해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설령 과학자로 취업해도 박봉이거나 성과가 없으면 금방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 또한 믿었던 국가연구과제도 실용화하지 못하면 평가를 못 받게 되고, 한 번 미끄러지면 다시 구제받기 없는 오디션 프로그램과 비슷하다.

 

 

< 찰스 디킨스(1812-1870)는 영국의 소설가이며 대표작은 올리버 트위스트, 위대한 유산, 크리스마스 캐럴, 두 도시 이야기 등이 있다. >

 

  가끔 X-선생은 찰스 디킨스처럼 우리 과학계를 묘사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감히 과학자의 삶이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산불을 끄는 소방관과 동일하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늘 조급하게 단기성과를 위해 과학계에 투자해 왔고, 그 단기성과에 부끄러워하면서도 돈이 되는 것에 용서를 해 왔으나, 이제 단기성과만으로 과학기술을 이용한 수익창출은 그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특히 과학기술 투자는 천연자원이 부족하고 좁은 영토에 사는 우리나라에게 매우 중요한 ‘아젠다’인데, 그것을 기획하는 사람들의 중심은 과학자들이 아니다. 이런 조건에서는 그나마 정부에서 직접 운영하는 출연연구소는 사정이 나은 편이었나, 1996년 이후 정부출연구소(이하 ‘정출연’)의 과학자는 월급이 연구사업비에서 나온다(IMF 이후 과학자의 고용은 더욱 불안해진다). 결론적으로 연구사업비를 수주하지 못하면 월급이 나오지 않는 것이 현재 구조이다. 결국 정출연은 연구비를 먹는 공룡으로 둔갑하여 심지어 대학교들과 작은 연구비로 놓고 경쟁해야 한다. 결국 선진국들이 가진 정출연과 대학의 상생구조는 생각보다 어려운 숙제로 남게 되었다. 여기서부터 과학자의 불편한 이중생활은 시작된다. 과학적 호기심으로 인한 연구와 자신의 월급을 만들기 위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는 이런 학계의 분위기는 단순히 정출연을 넘어 대학들까지도 퍼져 나가고 있다. 그러므로 생계형 과학자로 내몰아 연구결과를 도출하는 제도가 정착(성과를 쥐어짜는 구조)되어 가고 있고, 그 ‘채찍’은 더욱 강도가 높아져만 가고 있다. 그래서 현 정부의 입각과 더불어 과학제도의 개선이 과학자들에게 매우 큰 기대가 있었지만, 올해 8개 기관의 시범운영(PBS 개선안 적용)으로 그친 것으로 매우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채찍’과 비견되는 ‘당근’은 무엇인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정부는 과학자의 동기여부를 위해 특허를 기업에 팔아 수익을 주는 것을 ‘당근’으로 주요하게 사용해 왔다. 과학자의 불편한 이중생활의 고민(더 악랄한 자본가로의 변신을 독려하는 구조)은 더욱 깊어만 간다.

 

 

 

  우리는 좀 더 순수할 수 없을까. 학문이 자본을 떠나 보다 공익적으로 우리나라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나아가 세계인을 위해 공헌할 수는 없을까. 고성과 속초에 난 산불을 끄기 위해 불평 없이 달려간 소방관들처럼 과학자들에게 그런 사명감을 주고 대우를 해주는 것이 어떨는지. 매년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우리나라의 과학자들에게 X-선생은 조국을 위해 일하라고 그들을 붙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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