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선생의 과학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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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와 동정적 치료 사이김정영(선임연구원,한국원자력의학원)2019-06-24

  지난 5월 23일, 테슬라의 CEO인 엘런 머스크는 하나의 로켓에 60개의 인공위성을 탑재하여 지구 궤도에 쏘아 올리는데 성공하였다. 이로써 테슬라 발표한 스타링크(Starlink) 프로젝트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지금 우리의 밤하늘에 60여 개의 인공위성이 나란히 줄을 지어 지구를 자전하고 있다. 엘런 머스크의 테슬라는 앞으로 1만 2천여 개의 인공위성을 더 쏘아 올릴 예정이다. 결국 그와 그의 회사가 꿈꾸는 일은 고속 무선인터넷을 전 세계 어느 곳에서 구현하는 일이 될 것이고 - 적어도 현재까지는 무료 인터넷을 표방하고 있다 - 지구를 거대한 인공위성 띠로 둘러싸는, 스타링크 프로젝트는 테슬라의 첨단 인터넷 기반의 정보 플랫폼을 만드는 일임이 자명하다. 그리고 테슬라가 만든 무인 시스템(예: 전기차 등)이 그 플랫폼을 기반으로 동작하며, 우리 삶의 변화를 또 다른 새로운 과학기술의 문화로 인도할 것이다.

 

  그러나 대표적인 몇몇 천문학계는 테슬라의 스타링크 프로젝트가 천문학 연구를 가로 막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엘런 머스크가 자신의 일을 페이스북을 통해 밝힌 - 지구 전체 여론은 테슬라의 실험에 매우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은 고속 무선 인터넷을 지구 어느 곳에서나 무료로 쓴다는 일에 고무되어 있다. 이러한 테슬라의 프로젝트가 그들만의 아이디어는 결코 아니었다. 저궤도 인공위성 활용에 대해서는 여러 회사들이 고민했던 사업이었고, 테슬라가 구사하는 기술은 이미 지난 60년대부터 쌓아온 인류의 우주 과학기술의 실용적인 모델이기도 하다. 그리고 테슬라의 기술이 실현되었을 때, 기존 인터넷 업체들과의 전쟁이 예상된다. - 우리는 늘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매달 큰돈을 지출하고 있기 때문에 테슬라의 기술에 대해 은근히 편을 드는 것은 않는지 모르겠다.

 

< 팔콘 9 로켓에 실어 저궤도로 올려 보낸 인공위성과 스타링크 프로젝트, The Sun 인용 >

 

  이처럼 우리는 새로운 과학기술로 생기는 인류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새로운 과학기술을 가장 먼저 접하는 과학자들은 현실이나 학술논문을 통해 이러한 고민에 늘 휩싸인다. 그리고 첨단기술에 대한 이슈는 우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류사의 의학적 경험을 토대로 첨단기술이 더해지면서, 우리의 질환 진단기술은 테슬라의 꿈보다 더 눈부시게 발전했다. - 생각해 보라, 이제 우리는 병을 일찍 발견하면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을 먼저 한다. - 우리의 현대 의학기술은 인류에게 고령사회(장수마을)를 만들게 하였고, 이것은 인류의 번영과 동시에 새로운 질병들과 싸우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생존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달리, 우리 사회에 난치병 환자들은 약물에 의해 스스로 고통 없이 죽는 길을 선택하는 문화가 먼저 형성되고 있다. 일부 선진국들에서 시행되고 있는 ‘존엄사’는 – 안락사를 넘어 - 아름답게 죽는, 또 다른 생명존엄을 생각하는 논쟁을 최근 우리들에게 불러일으키고 있다.

 

 

  X선생도 말기암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임종을 맞이하는 가족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아팠던 적이 있었다. 세상 누구보다 자신감에 넘치고 큰 목소리로 호령하던 사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너무나 마른 모습과 너무나 아파 신음소리조차 아끼는 모습은 아직까지도 눈에 선하다. 그렇다, 이러한 개인적 경험은 너무나 강렬해서 ‘존엄사’의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이것은 법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한 인간의 선택임을 분명하다. 그렇다면 반대로, ‘동정적 치료’는 어떠한가. 우리의 의학기술은 삶과 죽음을 모두 결정짓는 기술이 동시에 늘 발전했고, 많은 과학자들은 인류 삶의 건강한 연장을 꿈꾸며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생존을 위한 의학기술은 – 초강력한 안전을 빌미로 - 개발하기 위해 많은 자본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고, 그것을 주도하는 연구 집단은 결국 대기업(다국적 거대기업)이 될 수밖에 없다. 최근 국내 제약업계를 들썩이게 했던 ‘인보사’ 사태도 기업의 이윤 추구에서 오는 첨단기술의 약점이 만들어낸 참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의학기술에는 기업의 투자가 아닌 순수하게 국가의 자본이 들어가 탄생시킨 첨단 의료기술이 의외로 많이 있다. 그러나 이 기술들은 기존의 제약이나 의료기기 회사가 받은 엄격한(막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안전성 검사를 국가 연구비만 가지고 통과하기 힘들다. 특히 전문 학술논문에서 유사 기술들의 안전성이 검사된 것조차, 혹은 선진국들에서 이미 임상허가가 난 복제(국산)기술조차 막대한 비용을 들어 과도한 안전성 입증을 해야 한다.

 

 

  그러나 삶의 기로에서, 생존을 선택한 환자들은 국내 보유한 첨단 의료기술조차 써보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다가 외국으로 나가 치료를 받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들의 간절한 의지에 비해 규제 장벽은 ‘존엄사’와 다르게 너무나 높다. 오히려 그들에게 죽음이 더 쉽고 더 경제적이라는 교훈을 주며, 삶을 포기하는 시현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선진국들은 ‘존엄사’처럼 ‘동정적 치료’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물론 여기에는 당연히 특정 기업의 경제성은 배제되며, 생존 희망을 살려줄 수 있는 첨단 의료기술을 ‘존엄사’와 유사한 방법으로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X선생은 ‘동정적 치료’라는 말보다 ‘존엄사’처럼 ‘존엄치료’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이 든다. 물론 제약이나 의료기기 회사의 상술로 인해 첨단기술의 규제가 높은 것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죽음보다 생존을 선택하기 어렵다는 게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정부가 방치하는 것도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시 한 번 질문해 보자.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우리는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경제·과학기술적으로 더 쉬운 사회, 이것이 과연 올바른 사회의 선진적인 건강시스템일까.

 

 다시 엘런 머스크의 꿈으로 돌아 가보자. 그는 고속 무선 인터넷에서 시작하는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1만 2천여 개의 위성을 하늘로 올려 보내려 한다. 그러나 우습게도 그것을 제제할 지구 하늘의 저궤도에 대한 규제가 없는 관계로, 테슬라의 혁신적인 기술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다. 가끔 우리는 규제를 다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 규제가 몇몇 대기업들에게만 유리한 제도가 아닌지를. 이미 기술이 고도화된 다국적 의료기업들은 안전을 담보로 후발 주자들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여러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는지 모른다. 특히 국가 연구비로 투자(상업적 이익이 배제)된 기술에 대해서는 우선적으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나의 가족이 생존의 기로에서,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한다면 당신은 정부의 규제에 따라 아무런 치료를 하지 않을 용기가 있는가. ‘존엄사’를 공론화 하는, 성숙한 지성시대에서 ‘동정적 치료’와 더 나아가 ‘존엄치료’에 대한 냉정한 과학기술의 검토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만들어온 첨단 의료기술을 마냥 상업적인 잣대로만 계속 해석해야 하는 것인지. 그것이 결국 몇몇 다국적 기업에만 이득이 되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할 시점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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