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의학, 이것만 알려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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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국내 방사선의학의 역사한국원자력의학원 김희진, 김정영 공저2019-08-29

  매년 여름이 올 때마다 항상 작년보다 더운 거 같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올 여름은 ‘작년에 비하면 최고기온이 3도나 낮아 시원하다’고 생각하면서 6월 말부터 에어컨을 틀고 살았다. 그렇게 에어컨의 원리를 최초로 개발한 윌리스 하빌랜드 캐리어(1876~1950)를 찬양하며 지내는 와중에 8월은 절반이상 지나갔고, 10호 태풍 크로사의 영향으로 광복절 주에는 서울 낮 최고기온이 28.6도 까지 떨어지는 등 제법 선선한 주말을 보낼 수 있었다. 19일 부터 다시 낮 기온이 오른다고 하지만 처서가 지나게 되면 더위는 한풀 꺾이고 청명한 가을하늘을 볼 수 있을 것이라 필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가을이 어느덧 성큼 다가와서 일까? 한통의 독자의견이 가을바람을 타고 필자 앞으로 도착했다. 내용은 본 코너의 4화였던 ‘방사선의학의 역사’를 재미있게 읽었으며, 국내의 방사선의학 도입과 발전에 대한 내용도 다루어 졌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번 ‘방사선의학, 이것만 알려주마!’에서는 소중한 독자의견을 반영하여 국내 방사선의학 도입과 발전과정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한 장으로 보는 우리나라 방사선의학 연대기>

 

 

  연대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현재 남아있는 문헌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의료용 방사선기기 대해 언급된 자료는 1911년에 발간된 제1회 조선총독부 의원연보이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총독부 의원에 X선 광선실을 본관 1층에 확장·설치한 것이 기록되어 있으며 1913년에는 평안남도 평양병원과 세브란스병원 부속병원에 각각 X선 발생장치가 도입·가동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1회 조선총독부 의원연보에는 구순암과 설암에 대해 X-광선요법을 시행한 기록이 남아있어 방사선을 이용한 치료행위도 이 시기부터 행해졌다고 볼 수 있다.

  뢴트겐이 1895년 방사선을 발견한지 16년 만인 1911년에 우리나라에 방사선장비가 도입되어 촬영과 치료에 이용되었다는 것인데, 어두웠던 우리나라의 일제강점기 시절을 생각한다면 인명과 연관된 방사선의학기술의 도입이 긍정적으로 보이지만, 과연 이때 도입된 방사선기기들이 우리나라 국민들을 위해 들여온 것인지에 대해서는 매우 큰 의문이 남는다. (사족: 일제강점기 시절에 설치된 철도, 기차, 도로 등이 우리나라 근현대화의 초석이 되었다고 ‘일부’사람들은 주장하지만, 이때 설치된 기반들은 오로지 일본이 우리나라의 물자들을 자국으로 신속하게 빼돌리기 위한 목적이었다.)

  8월 15일 광복절이 불과 며칠 전 이어서 필자의 사족이 길었다. 어쨌든 1910년대에 도입된 방사선기기들은 이후 많은 병원들에 설치되어 1938년에는 우리나라에 62대의 방사선기기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라듐을 이용한 방사선치료는 19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에는 방사선을 이용한 진단과 치료가 학문적으로 독립되기 이전이어서 1932년 창립된 조선렌트겐협회를 통해 학문적 연구도 진행하였으며, 조선렌트겐협회는 해방 후 1945년 10월 대한방사선의학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활동을 계속하게 된다.

 
 
<(좌) 1911년에 조선총독부의원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X-선 장비, (우) 1912년 조선의학회잡지에 실린 우리나라 최초의 X-선 사진 (출처: 한국 방사선의학 발전사(1910~1945))>

 

 

  1950년대는 국제적으로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각종 기술제휴와 정보교류가 확산되었으며 국내적으로는 6.25전쟁 이후 나라 재건에 힘쓰던 시기였다. 천연자원이 많지 않아 일찍부터 인재양성 정책에 중점을 두었던 우리나라는 원자력과 방사선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1956년에 문교부 기술교육국 산하에 원자력과를 신설하여 원자력·방사선기술 도입과 인력양성을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지난호에서 비슷한 내용을 본거 같다면 기분 탓이다.) 180~250kVp 심부치료기가 이 시기에 설치되었으며 1955년에는 UN 한국재건단의 원조로 국내 최초 투시촬영기와 단층촬영기가 도입되었고 이후 자체 또는 차관자금을 투입하여 혈관조영 장비(1958년 도입)등을 도입하기 시작하였으며 1959년에는 국내 최초로 갑상선 기능 항진증 환자에게 방사성요오드(131I) 요법을 시행하여 핵의학 임상적용의 효시가 된다.

  1960년~1970년대는 우리나라에 방사선의학 임상분야 도입이 활발히 이루어진 시기이다. 1962년에 한국원자력연구소에 TRIGA Mark Ⅱ 원자로가 설치되어 일부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를 생산하게 되면서 핵의학 발전에 기폭제가 되었으며 광학스캐너가 1964년 도입되었다. 1969년에는 원자력병원에서 60Co 원격치료장비, 유방촬영장비 및 A-mode 초음파 검사장비를 최초로 설치였으며 같은 해에 감마카메라가 서울대학교병원에 설치된다.

  1970년대에는 보다 현대화된 방사선의학 임상 인프라가 구축되기 시작한다. 세브란스병원과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의료용 선형가속기(1972년), 방사선치료계획시스템과 방사선측정장치(1978년), 고에너지 근접 방사선치료장치(1979년)가 차례로 도입되며 방사선치료 임상분야가 발전하게 된다. 이 시기에 측정 시료와 방사성동위원소의 항원-항체 반응을 이용한 방사면역측정법이 임상에서 널리 이용되기 시작하였으며, 1977년에는 경희의료원에 국내 최초로 CT 장비가 도입되었다.

 
 
<(좌) 1969년 국내 최초로 설치된 감마카메라, (우) 1969년에 도입되었던 60Co 치료기 (Piker V4M/60) (출처: 한국원자력의학원 50년사)>

 

 

  대부분의 과학기술은 새로운 자연현상을 발견하고 그에 따른 이론정립과 증명·응용 단계를 거쳐 실용화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하지만 과거 우리나라는 선진국에서 이미 사용하고 있어 검증된 방사선의료기기들을 도입하여 바로 환자진료에 활용하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방사선생물학, 의학물리, 방사화학 및 분자영상과 같은 기초·응용 연구는 그동안 구축된 방사선의학 인프라와 임상자료들을 바탕으로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84년 원자력병원에 국내 최초로 의료용 동위원소 생산 전용 50MeV 사이클로트론(MC-50)이 설치되어 1989년부터 국내 최초로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인 201Tl과 67Ga을 생산·공급하게 된다. 방사성동위원소의 생산 및 임상적용을 계기로 1990년대 들어서는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많은 기초의학 연구와 새로운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 개발 연구가 활기를 띄게 되면서 우리나라에 방사화학과 분자영상 분야가 뿌리내리는 계기가 된다. 1994년 서울대학교병원에 국내 최초 PET 장비가 도입되면서 SPECT용 방사성동위원소인 201Tl, 123I의 외에 PET 진단용 방사성동위원소인 18F, 11C를 개발하여 국내 임상 및 기초연구를 위해 공급하였다. 2003년에 국내 첫 도입된 PET/CT장비는 암환자 진단에 큰 역할을 하여 전국적으로 설치되었으며, 2009년에는 PET/MRI 융합시스템이 구축되어 핵의학진료와 임상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좌) 국내 최초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 생산(1989년), (우) 50MeV 사이클로트론 가속기 가동(1984년) (출처: 한국원자력의학원 50년사)>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악성종양에 대한 방사선치료 비중이 늘어나게 되면서 1982년에 방사선치료가 전문 진료과(舊 치료방사선과, 現 방사선종양학과)로 독립하게 된다. 1986년에는 중성자선암치료기, 마이크로트론 방사선치료기가 도입되었으며 1987년에 의료용 선형가속기 기반 방사선수술요법을 도입하여 보다 고 선량의 방사선을 종양조직에 조사하여 치료하게 된다. 이후 1990년대 초반부터 대학병원 및 종합병원을 중심으로 방사선치료가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2000년에는 방사선종양학과가 있는 병원이 51개, 전국에 설치된 선형가속기가 71대에 이르게 된다. 방사선치료 인프라 확대와 더불어 3차원 입체조형 방사선치료(1994년, 세브란스병원), 세기변조방사선치료(2001년, 한림대학교 평촌성심병원), 국내 최초 사이버나이프 도입을 통한 방사선수술시행(2002년, 원자력병원), 국내 최초 양성자치료시작(2007년, 국립암센터) 등 최신 방사선치료기술도 빠른 속도로 국내에 도입·정착되었다.

 
 
 
<(좌) 13MeV 사이클로트론 개발(2002년), (가운데) 국내 최초 PET/CT 도입(2003년), (우) 국내 최초 사이버나이프 도입(2002년) (출처: 한국원자력의학원 50년사)>

 

  1980년대 중반부터 국내 MRI 장비가 도입되면서(1984년 0.2T MRI, 1986년 2T MRI) 영상의학 분야 역시 빠르게 현대화가 되었다. 기존에는 필름을 이용하여 X선 사진을 인화하였지만 1986년 디지털 X선 촬영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일반촬영장비의 세대교체 시발점이 된다. 이후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 Picture Archiving Communication System)의 개발로 의료영상 패러다임이 필름에서 컴퓨터영상으로 크게 변화하게 되고, 1994년 삼성서울병원에서 국내 최초로 PACS를 도입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많은 병원들도 앞 다투어 PACS를 도입하게 된다. 현재 국내 대학병원 및 종합병원은 전부 PACS가 구축되어 있다.

 
 
< (좌) PET/MRI 시스템 구축(2010년) (출처: 한국원자력의학원), (우) 국내 최초 양성자치료기 도입(2007년) (출처: 국립암센터 홈페이지)>

 

  우리나라 방사선의학은 발전기를 지나 도약기로 접어들고 있다. 선진국의 기술에 의존하던 시기를 지나 정부의 지원과 연구자들의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난치암 환자들의 진단과 치료, 생존율 향상 등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들이 세계적인 학술지에도 많이 발표되고 있으며 개발도상국 방사선의학 전문가 인력들에게 기술전수 사업을 수행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기술공여국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 2010년 이후 최신 방사선의학 연구·임상 현황도 넣고 싶었지만, 필자에게 허락된 지면이 많지 않은 관계로 이쯤에서 마무리 하고자 한다.

  이번 호를 준비하면서 필자도 국내 방사선의학 역사에 대해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방사선의학 기술을 뿌리내리기 위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들도 느낄 수 있어서 보다 의미가 있지 않았나 생각해보며 소중한 의견주신 독자분께 지면을 통해 감사인사를 전한다. ◼(다음 회에 계속 됩니다.)

 

1) 유형식, 한국 방사선의학 발전사(1910~1945), 대한영상의학회지, 2014;71(6):265-277

2) 류성렬 외 5인, 방사선종양학과 전국 통계(1999년~2001년), 대한방사선종양학회지 2004;22(3):234~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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