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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병 정복의 날을 기다리며핵의학분과 세부편집장, 핵의학 과장 변병현2018-12-20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예측들을 한다. 그 예측들은 틀리기도 하고 맞기도 하지만 로또가게에서 6개의 번호를 선택할 때를 제외한 대부분의 경우에는, 살아가면서 얻게 된 지식과 예측경험들을 종합하여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 내 중학시절, 항상 최신형 컴퓨터를 사던 부유한 친구를 따라 용산 전자상가에 갔던 기억이 있다. 전자상가 아저씨는 당시 매장 전면에 전시된 1기가바이트 하드디스크를 탑재한 컴퓨터를 가리키며 우리에게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저 정도 용량이면 너희들이 평~생 동안 필요한 모든 자료를 저장할 수 있어!” - 오늘날 모바일로 영화 하나 보는데 필요한 저장용량도 1기가가 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당시 전자상가 아저씨가 단지 물건을 팔아먹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때만 해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었으니까.

 

알츠하이머 정복을 향한 한줄기 빛

  당대에 이름 좀 날린 지식인들조차 빗나간 예측을 한 예는 셀 수 없이 많다. "발명될 수 있는 것은 모두 발명 되었다." (1899년 미국 특허청 관리 찰스 H 듀얼), "개인용 PC는 640KB 메모리면 충분하다." (1981년 빌 게이츠) 등등. 하지만, 전체 치매의 70%를 차지하는 알츠하이머병의 치료제로서 BACE 억제제 임상시험이 시작될 때 많은 연구자들이 보였던 긍정적인 예측들은 굉장히 합리적이고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것이었다. 베타아밀로이드는 알츠하이머병의 대표적인 원인물질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BACE억제제(Beta-secretase inhibitor)라는 약물을 투여하여 뇌 속의 베타아밀로이드 생성을 억제하는 것은,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혈전을 억제하는 약물을 이용하여 성공적으로 심혈관질환을 치료해온 의사들에게는 숨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발상이었다. 실제로 다수의 비임상 시험에서 BACE 억제제는 뇌속의 베타아밀로이드를 제거시켰고 유의미한 인지기능 향상을 가능하게 했던 만큼, 많은 연구자들이 이제는 달력을 보면서 다국적 제약사들의 3상 임상시험 결과만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보기 좋게 빗나간 예측

  최초의 BACE억제제 3상 임상시험은 정도가 약하거나 중간 정도인 알츠하이며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수행되었는데, 불행히도 대조군과 비교하여 BACE 억제제를 투여한 군에서 유의미한 인지기능 향상결과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제약사와 연구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좀 더 초기의 인지기능 저하상태인 환자들을 대상으로 3상 임상시험을 수행하였다. 이 결과들은 올해 10월 국제학회에서 발표되었는데, 개인적으로 많은 관심을 갖고 이 학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BACE 억제제 임상시험을 각각 수행 중인 5개 글로벌 제약사들에서 3상 또는 2상 임상시험결과를 발표하는 순간, 학회장에는 침통함과 술렁거림이 공존하는 묘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발표된 임상시험들에서 일관되게 BACE억제제가 인지기능을 향상시키지 못했다. 심지어 이들 중 가장 다수의 대상자에게 수행된 3상 임상시험 결과, BACE억제제를 투여한 군이 대조군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인지기능이 악화되었고 BACE 억제제를 고용량으로 투여한 군에서 저용량으로 투여한 군보다 인지기능 악화가 심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이런 인지기능 악화는 BACE억제제를 중단하고 일정시간이 지나면 다시 대조군의 인지기능 악화속도 수준으로 회복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학회에서는 “이 임상시험들이 실패한 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주제로 3일간 토론이 이어졌다. 베타아밀로이드가 정상노화과정에서 일정부분 신경을 보호하는 기능을 담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논문들을 발표했던 어느 교수님은 질의응답시간에 “내 기존 연구들이 맞는 것 같긴 한데,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며 씁쓸해하시기도 했다.

 

그럼에도 기차는 달린다.

  물론, BACE억제제가 완전히 실패했다고 단언하기에는 이르다. 대상군을 달리하여 좀 더 정상인에 가깝지만 베타아밀로이드가 뇌에 약하게 축적되어있거나 향후 축적될 위험이 있는 사람들(혈액검사로 이런 사람들을 예측 가능하다는 연구들이 있다)에게 BACE억제제를 투여한다면 알츠하이머병의 예방적 효과가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전지구적인 노력이 들어간 3상 임상시험들의 잇따른 실패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에 다른 접근이 필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들 중 가장 선두에 있는 것은 또 다른 알츠하이머병 원인물질인 타우단백 생성억제제이다. 이 외에도 베타아밀로이드에 대한 백신이나, 이미 손상된 뉴런의 기능을 회복시키고 추가적인 손상을 억제하는 약물의 초기임상시험도 진행 중이다. 다수의 연구자들은 결국 어느 한가지 약물만으로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할 수는 없으며 암이나 류마티스 관절염에서와 같이 여러 약제의 복합요법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론, 어떤 약물을 어느 상태의 환자에게 어떠한 조합으로 어느 시점에서 얼마 간의 기간 동안 투여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은 길고 험난한 여정이 될 것이다. 확실한 것은 이 과정에서 방사선의학은 중요한 나침반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란 점이다. 이미 베타아밀로이드와 타우단백을 PET으로 영상화하는 방법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의 효과를 평가할 때 필수자료들 중 하나로 이용되고 있고, 보다 선행되는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 제시되고 있는 뇌의 염증반응을 영상화하는 PET 임상시험들도 보고되었다. 관련연구가 거의 없긴 하지만, 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표적치료도 고려해볼 수 있다.

 

  영국 학술원장이었던 캘빈경은 1895년 당시 나와있는 최신 연구결과들과 평생 동안 쌓아온 자신의 이론적 지식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끝에 “공기보다 무거운 물체가 하늘을 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는데, 불과 몇 년 후 라이트 형제가 비행에 성공하게 된다. 알츠하이머병 정복을 위한 여정에도 비록 잠시 동안의 어려움이 있을지언정 인류가 존재하는 한 결코 포기는 없을 것이다. 마침내는 질환의 정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알츠하이머병을 어느 정도 예방하고 진행을 조절할 수 있게 되는 날이 곧 올 것으로 기대하며, 그 과정에서 방사선의학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지켜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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