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선생의 과학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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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남방정책 따라잡기김정영(책임연구원,한국원자력의학원)2020-01-07

  간만에 연차를 냈다. 소소하게 집안일을 보내고 나서, 저녁쯤에 잠이 오지 않아 모처럼 TV를 켰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결국 SF영화 한 편을 결제하고 봤다. ‘Justice League, 저스티스 리그(2017년)’ - 배트맨, 원더우먼, 아쿠아맨, 플래시, 빅터 스톤의 슈퍼 히어로가 우주의 악당을 맞서 지구를 구한다는 이야기는 과학적 상상이 총망라되어 X-선생의 흥미를 끌기는 충분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다. 영화 속에서 배트맨이 플래시(빛보다 빠른 슈퍼 히어로)를 만나 악당을 같이 물리칠 것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플래시가 틀어놓은 컴퓨터 모니터에서 ‘블랙핑크’의 뮤직비디오 ‘마지막처럼’이 나오는 것이었다. 소심한 슈퍼 히어로인 플래시가 아이돌그룹 노래를 좋아한다는 설정이다. 영화 속 낯익은 한국 아이돌그룹의 노래에 괜한 미소가 나왔다. 사실 X-선생이 아이돌그룹을 알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 딸이 춤 연습을 한다고 하면서 집 안에 몇 달 동안 울려 퍼졌던 노래가 ‘블랙핑크’의 것이었다. ‘블랙핑크’는 지수, 제니, 로제, 리사로 구성한 여성 아이돌그룹이며, X-선생이 들었던 대표곡은 ‘뚜두뚜두’와 ‘마지막처럼’이 있다. 이 그룹은 BTS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특히 동남아시아 지역은 압도적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블랙핑크’의 리사는 태국 출신이며 이질감 없이 한국 아이돌그룹에 녹아 들어가 마치 우리나라 사람 같다. - 아시아 문화가 미국의 대표적인 히어로 영화에 배경음악으로 진출하는 것이 새삼 놀랍고 흥미로웠다.

 

< ‘블랙핑크’의 MTV 소개글 및 저스티스 리그의 한 장면 >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한국은 지난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중국 시장으로의 어려움을 겪었고, 여기에 일본 정치계의 반일 감정 고조로 인해 일본 시장으로의 진출에도 늘 어려움이 존재했다. 또한 미국 시장 역시 트럼프 정부의 국수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주류 정책방향이 되면서 우리나라는 수출의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과거 우리나라는 구매력이 좋은 선진국들을 대상으로 모든 정치, 경제, 외교를 펼쳤었으나, 이제 우리는 미국, 중국, 일본을 떠나 새로운 시장이나 우호국들을 만들어야만 했다. 이런 가운데 K팝은 노련하게 일찌감치 동남아시아지역에서 선호도가 높은 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도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동남아시아에서 우리나라는 문화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한국의 문화 사업이 가지는 그 자체의 경제적 이익도 있지만, 문화의 전파는 우리나라 제품들에 대한 좋은 이미지도 자연스럽게 동반(마케팅)한다. 보다 직접적으로 그 뮤직비디오, 영화나 드라마 속에 나오는 제품을 구매하고 방문하는 것은 이미 중요한 마케팅 효과로 입증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특히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은 우리에게 매우 전략적인 시장인 것이다. 남방 국가들은 인구만 하더라도 6억3천만 명에 달하고 GDP만 해도 2조5천억 달러에 육박하며 매년 5% 이상 성장하는 시장이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보다 많이 젊다. 우리나라는 중위 평균 연령 41세인데 반해 아세안은 28세이다. 또한 이들은 대부분 북한과 수교도 하고 있어 한반도 평화정착에도 도움을 주는 이점도 있다.

 

< 우리 의학원이 주최한 아세안 방사성의약품 전문가 훈련과정 >

 

  지난 2019년 12월 2째 주에 우리 의학원에서 ‘아세안 지역 방사성의약품 전문가 훈련과정’이 있었다. 아세안 지역에서 온 전문가들은 우리 의학원에서 주최한 방사성의약품 관련 고급 강좌(의학원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한 국내 전문가로 구성)와 투어를 경험했고, 일과 시간 이후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쇼핑이나 문화를 즐기고 돌아갔다. X-선생은 몇몇 국가대표들과 함께 저녁 술자리를 하며 마음 속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대화가 영어로 진행되는 것 빼고는 대부분 공감대가 빨리 형성되었다. - 한국의 전통술도 소개하면서 주요 관광지나 음식도 소개하며, 각 나라의 문화적 차이에 대해 아시아인으로써 공감했다. 최근 영화 ‘기생충’도 아세안 지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 그래서일까, 선진국들에서 배우는 것보다 우리나라에서 배우는 것이 더 편안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 이유는 서구사회가 바라보는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 과학기술교육에서도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그것 때문에 자존감이 떨어지고, 또한 너무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을 배우고 각자 자신의 국가로 돌아가면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의학원에서 주최한 교육에서는 - 한국이 경험과 인프라가 부족했던 시절에 쌓아올린 경험들의 소개하는 – 방사성의약품을 생산하는 한국적 과학기술은 그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그렇다, 아세안이 아무리 선진국을 쫓아가려고 하지만, 인프라 측면에서 대부분 그 장벽에 가로 막힌다. 그렇다고 의약품 기술이 안정성을 낮출 수는 없다.

 

  우리는 다소 부족한 인프라에서 최적화된 상태로 방사성의약품을 연구하고 제조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지만 국제학회(사회)에서 발표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선진국 관점에서 보면 철이 지난 기술이 때문이고, 대부분의 국제학회는 그들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작동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세안 전문가들이 원했던 것은 우리가 겪었던 소중한 과학기술의 성장통, 그 현실적인 이야기이었다. 이렇듯 어떤 과학기술은 높은 수준의 인프라(안정적이고 저렴한 전기 및 수도, 높은 온도나 습도 등) 없이 구현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개발도상국에서 재현하기란 매우 힘들다. 그러므로 과학기술은 그 나라의 인프라와 문화에 적합하게 적용될 필요가 있고, 이것을 ‘적정기술’이나 ‘적정과학기술’이라 부를 수 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X-선생이 2008년에도 베트남 전문가들에게 알려 준 기술들이 2018년에 구현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 의학원에서 주최한 방사성의약품 전문가 훈련과정에서도 마냥 최신 기술을 소개하는 것보다 각 나라별에 적합한 과학기술(적정기술)을 적용하는 방법을 찾아 주는 것에 방점을 두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적으로 다가가 나라별 과학기술이나 문화 인프라의 한계를 듣고 문제를 찾으러 같이 고민해 주었다. 또한 비슷한 환경끼리 놓인 나라들을 한 팀으로 묶어서 문제해결 토론을 진행하여 향후 스스로 과학기술네트워크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의 ‘新남방정책’도 사실 따지고 보면 큰 패러다임의 전환은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 온 경험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일본이나 중국처럼 우리나라가 물량으로 승부할 수도 없고 거대 자본으로도 이끌 수가 없다. 그러므로 ‘新남방정책’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적용하며 ‘3P’라는 약어로 잘 설명될 수 있다. - 청와대 김현철 경제보좌관이 잘 설명(2017.11.09.)하고 있다. - 첫 번째는 People이다. People to people, heart to heart로 승부하는 다층적인 인적교류의 확대이다. 두 번째는 Prosperity로 공동번영이라 말할 수 있다. 아세안의 풍부한 노동력과 자원을 활용하되 우리의 자본과 기술을 공유하면서 거기에서 서로 윈-윈의 시너지 효과가 나도록 배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peace이며, 전 세계 해상 수송의 3분의1이 통과되는 부분이고, 이곳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맞부딪치는 요충지이기 때문에 우리는 전략적으로 잘 활용해야 한다고 요약된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가 일본이나 중국처럼 노벨상을 타는 기초연구를 뿌리 깊게 한 것도 아니고 국내 과학계의 대우가 특별해서 연구만 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세안으로 대표되는 많은 개발도상국들에게 그들이 필요한 적정기술을 전달할 능력이 된다. - 또한 은퇴한 과학자들의 새로운 기술 전달과 개발의 무대로 활용한다면 - K팝처럼 그들을 우리의 과학계 일원을 받아 들여 세계적인 과학기술을 창조해 낼 수 있다. 그리고 과학기술계에서 가장 실용적인 의학기술은 그 자체가 가진 경제적 가치(수출 등)보다 아이돌그룹의 성공(활용)사례처럼 국가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신숙정

    김정영박사님 글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편안하게 그렇지만 소소한 행복과 공감을 느끼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주힉회사 큐라켐 신숙정 배상 P.S. 다복한 경자년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2020-01-13 11:5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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