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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의 멋진 비행에 갈채를...김정영(선임연구원,한국원자력의학원)2018-12-21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발사대에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는 곧게 솟아 푸르른 하늘을 가르며 151초 동안 아름다운 비행을 했다. 지난 11월 28일, 이와 같이 우리 과학계에 첨성대의 개발과 같이 새로운 역사가 또 하나 만들어졌다. 이 번 한국형 발사체(KSLV-2) 개발 사업은 - 국가 R&D 사업을 확인 가능한 NTIS 시스템에서 확인해 보면 – 연구 1단계의 사업단장을 공고(2011년 6월)로 시작하여 2017년까지 총 23개의 관련 과제로 만들어져 수행되었으며, 2010∼2021년(약 12년)까지 총 1조 5,449억원을 투자하는 3단계의 연구 프로젝트로 구성되었다. 이것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1단계(2011∼2014년, 4년)는 5∼10톤급 액체엔진 개발 및 시험시설 구축이고, 2단계(2015∼2018년, 4년)는 75톤급 액체엔진 개발 및 시험발사이고, 마지막으로 3단계(2019∼2021, 3년)는 3단형 한국형 발사체(300톤급) 개발 및 발사로 구성되었다. 그러므로 성공적으로 발사를 한 ‘누리호’는 7년 반을 걸친 2단계 연구 프로젝트의 최종 결과물인 셈이다.

 

 

< 누리호 발사 및 조립 모습, 출처: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공공저작물 이용 >

 

  X-선생은 ‘누리호’의 비행을 보면서 그것을 지켜보는 연구원들의 심정을 헤아려 보았다. 7년 반 동안 수행한 결과물을 바라보는 심정이란..., 4년을 준비하고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수상대 올라서서 - 애국가 울려 퍼지고 - 태극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과 비견될까. 얼마 전 동남아시아 축구대회에서 우승한 베트남 국가대표의 박항서 감독의 심정과 비견될까. 언론들과 인터뷰한 ‘누리호’와 직접 관련된 연구원들은 성공적인 발사 이후 잠을 설쳤다고 전해진다. X-선생도 2년을 준비한 방사성의약품 생산시설에서 첫 번째 약이 생산되어 첫 번째 사람에게 주입되어 성공적으로 암 검진을 할 때, 그날의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하물며 ‘누리호’를 만든 연구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기쁨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누리호’의 비행은 같은 대한민국의 과학자로서 너무나 자랑스러운 생각이 들었고 진심으로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한 ‘누리호’ 프로젝트의 뒷면에는 그 일이 성사될 수 있도록 많은 스텝들에게도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러나 한 편으로 무서운 상상도 해 보았다. 만약 ‘누리호’의 비행이 아름답지 못하고 추락했거나 폭파하였다면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발사체 연구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한 기분이 든다. 이것은 우리 기관에서 실제로 벌어진 사례이기도 하다. 암 치료 목적으로 개발된 중입자가속기 사업은 국비 7백억원, 지자체 5백억원, 한국원자력의학원 7백5십억원으로 총 사업비가 1천9백억 원이로 구성되어 2010년부터 추진되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1984년 일본은 암 치료 목적의 중입자가속기 사업을 하면서 총 사업비를 1조원으로 추진- 1994년 탄소이온 빔 조사에 성공한다 - 하였고, 시작부터 도시바, 히타치, 스미토모, 미츠비씨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함께 참여하였다. 그렇다, 한국형 중입자가속기는 기업들과 협력연구 없이 여러 모로 정말 저렴하게 연구되어 구현되었다. 또한 한국원자력의학원이 750억 원을 투자한다는 설정조차도 무엇에 근거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 물론 이 부분은 우리 기관의 잘못도 있을 것이다 - 대부분의 병원이 공공의료를 병행하면서 수익을 내면서 750억 원을 투자한다는 것이 말이 될까. 이렇듯 중입자가속기 사업은 정부의 투자비부터 마무리하는 과정 전체가 너무 저렴했다. 대부분 나라가 10년 안팎의 연구기간을 가지고 추진한 것에 비해 5년이라는 초단기적인 설정도 한 몫을 했다.

 

  보통 어떤 장비를 개발하고자 할 때는 제품비용에 10배를 곱하면 연구개발비이랑 대략 일치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연구비의 투자 개념이다. 내가 100원짜리 제품을 개발하여 만들어 팔기 위해서는 1000원을 투자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연구 분야에서 일반적인 통영 되는 상식만 적용해도 중입자가속기의 판매가격이 약 1천200~1천 500억 원임을 감안할 때, 연구비는 대략 1조원이 투입되는 것이 적정하다. 결국 과거 중입자가속기 연구 사업의 구조는 1번의 실패도 용납할 수도 없는 – 성공만 있는 - 구조를 가지고 시작했던 것이다. 개발 당시 세계에서 8대밖에 없고, 일본, 독일 등에서도 어렵게 성공한 첨단 의료기술에 도전장을 낸 우리나라의 도전기는 ‘누리호’를 너무 닮았다. 그러나 ‘누리호’는 성공했고 ‘중입자가속기’는 실패하였다. 중입자가속기 실패 이후 우리 기관은 여러 가지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으며, 그 실패에 대한 책임을 그 연구와 관련 없는 - 연구원들에게까지 책임을 묻는 - 연대책임 안으로 들어간 듯하였다. ‘누리호’처럼 성공했더라면... 역사의 가정은 늘 흥미롭지만 실제 역사는 고통스럽기만 하다.

 

  연구는 항상 성공을 목표로 도전하는 행위이며 아무도 실패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어떠한 연구원도 실패를 가정하고 연구에 임하지 않지만, 그것의 실패는 늘 곁에서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다. 그러나 왜 연구 프로젝트가 실패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그 실패 요인을 제대로 분석하면 투자한 연구비가 아깝지 않게 새로운 기술적 오류를 찾을 수 있는데 말이다. 예전에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과학자 선배(방사성의약품 연구개발)를 만난 적이 있다. 그 박사님은 성실-실패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미국의 연구풍토 -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 에 대해 매우 감동하셨고, 모국에 와서 발표한 내용도 실패했던 많은 사례들이었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묻자, 그는 내 조국의 과학자들이 나처럼 고생하지 않고, 미국의 첨단 의료기술을 빨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실패 사례를, 우리나라 과학자들에게 주로 발표했다고 말했다.

 

 

< 중입자가속기의 모습 및 치료 암종 소개, 출처: 일본 군마대학교 홈페이지 >

 

  실패를 당당하게 말하고, 그 원인을 같이 고민하고 재도전하는 것, ‘누리호’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외계 발사체가 아니며, 그 성공의 밑거름에는 많은 과학자들의 실패가 존재한다. 우리는 연구의 시작이 곧 성공이며 실용화라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고, 또 그 착각 때문에 기대하고 연구를 열정적으로 뛰어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목표한 연구가 실패했을 때는 분명히 문제를 떳떳하게 들어내고 차분하게 원인을 찾는 연구풍토가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할 당시에 국가연구소 과학자들의 월급을 좌우하는 PBS (Project Base System) 제도를 없애는 공약을 여러 차례 했었다. 대부분의 국가연구소는 정부로부터 연구비를 일부 보정 받고, 나머지는 많은 대학, 기업연구소들과 경쟁해서 나머지 연구비를 충당해야 한다. 만약 그 연구비를 충당하지 않으면 월급을 100%로 받을 수 없다. 그래서 요즈음 과학자들은 스스로 비약하여 ‘연구비 앵벌이’라고 말하는 이유 중에 하나이다. 현재 ‘누리호’를 쏘아올린 과학자들도 이러한 제도에 걱정을 할 수 밖에 없다. 지금은 성공했지만 어느 날 실패했을 때 그들은 월급을 걱정해야 하는 앵벌이가 될 수 있다. 요즈음 첨단 과학은 협력, 융합, 공존, 쌍생, 협업, 총합 등의 단어들이 풍부하게 쓰일 정도로 기술의 혼성을 중요시 한다. 그러나 PBS 제도는 과학자들 간 무한경쟁을 만들어 버린다. 그것도 월급이라는 생계 수단을 바탕으로, 더욱더 심각한 것은 연구비 수주에 떨어진 과학자들은 월급과 연구주제 모두를 접어야 한다.

 

 

< PBS 제도 개선에 대한 언론기사들 >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말하는 우리나라 운동선수의 소감 안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나 많다. 선진국들의 선수처럼 메달의 수상 유무와 관계없이 경기 자체를 즐기고 이해하는 운동선수는 우리나라에서 성장할 수 없을까. 마찬가지로 과학계 풍토도 비인기종목의 운동선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 헤어 나올 수 없는 경쟁(구조)의 늪을 이제 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국가연구소들마저도 이제 묵묵히 기술을 연마하는 연구 환경조차 만들지 못한 것은 국가의 미래 발전에 커다란 걸림돌로 만들어질 것이다. PBS의 경쟁 구조의 틀 안에 과학계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어지고, 비정규직은 고용 불안 속에서 연구를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 그러면서 ‘누리호’는 자신의 몫을 다하며 하늘로 성공적으로 날아갔다.

 

  정말이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왜 X-선생이 ‘누리호’의 아름다운 비행을 보며 자신의 일처럼 박수를 쳤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했으면 좋겠다. 요즈음 학생들에게 이미 과학자라는 꿈이 사라진지 오래이다. 오래 공부하고, 사회에 늦게 진출하고, 월급을 받기 위해 실패 없는 연구를 해야 하고, 고용은 불안하기 때문이다. 노벨상은 소수 과학자들에게 받기를 기대하며, 과학을 탐구하는 즐거움을 잊은 채로 대다수 과학자들은 희망 없는 비행을 하고 있다. 아름다운 비행을 한 ‘누리호’는 우리나라 과학사의 위대한 업적이며, 우리나라 과학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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