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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에 대한 상념김정영(선임연구원,한국원자력의학원)2018-03-20

  1988년으로 시간을 돌려 보자. 우리나라는 1987년 6월 29일 민주화 선언을 거쳐 서울 올림픽게임의 개최로 정치, 경제, 문화가 한반도에서 가장 급속히 발전하는 시기였다. 또한 당시 소련(소비에트연방, (舊)러시아)을 집권한 고르바초프는 글라스노스트(glasnost, 개방정책)와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개혁정책)를 이끌며 미소(미국과 소련) 냉전시대를 평화의 무대로 전환하였고, 서울 올림픽게임에 참가함으로써 한반도는 더욱 희망으로 가득했다.

 

  이때 영국의 ‘벤탐 델 출판사’에서 출판된 스티븐 호킹 박사(1942.1.8∼2018.3.14, 옥스퍼드대학교 물리학과 졸업, 캠브리지대학교 대학원 물리학과 박사 졸업, 영국)의 ‘시간의 요약사, A brief history of time: From the Big Bang to Black Holes’은 영국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수십 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1천만 부 이상이 팔려 나갔다. 결국 이 책은 스티븐 호킹 박사를 대중적으로 알리게 되는 출발점이며, 또한 그가 장애를 딛고 일어나 저술한 책이기에 천체물리학에 관한 과학도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 스티븐 호킹 박사의 (좌)젊은 시절과 (우)미국 드라마 ‘빅뱅이론’ 출연 장면 >

 

  ‘시간의 요약사’는 과거 천체물리학의 현대적 접근을 시도한 갈릴레이, 뉴턴, 아인슈타인 등의 과학자들의 연구 내용을 핵심적으로 요약해 주고, 빅뱅 이론, 블랙홀의 특이점 등을 설명하며 우주의 미래와 종말을 이야기한다. 또한 물리학적 법칙이 전혀 다른 우주 공간에서 달라지는 ‘시간’의 개념을 철학적으로 질문하며 소개하였다. 당시 이 책이 세계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빠른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미소 냉전시대를 넘어 평화로운 우주여행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특히 1980년대 초반, 미국의 우주왕복선은 콜롬비아호를 시작으로 새로운 개념의 우주여행을 제시하였으며, 그 어느 시기보다 인류가 곧 우주로 진출할 것이라 믿었다. - 물론 1986년에 발생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최초의 민간인 탑승한 프로젝트)가 발사 73초 후에 폭발한 사건(7명 전원 사망)으로 다소 주춤했지만, 이후 인류의 우주 진출은 더욱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모델로 만들어졌다. - 이러한 인류의 기술적 진보는 스티븐 호킹 박사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더욱 귀 기울이게 했다.

 

  그러므로 스티븐 호킹 박사의 저서는 선진국들의 과학기술이 우주로 모아진 시기에 우주로 가야 할 이유와 명분을 주었고, 그것이 일반인들과 무관하지 않음을 잘 설명했다. 그렇다고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요약사’가 쉬운 대중서적은 결코 아니다.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이 책은 ‘호킹지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실제 책을 구입하더라도 몇 페이지를 읽어나가기 쉽지 않다. 물론 ‘호킹지수’의 객관성에 대해 호불호는 있지만, ‘시간의 요약사’는 ‘호킹지수’로 평가하면 10페이지(6.6)가 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경험은 칼 세이건(1934.11.9∼1996.12.20, 시카고대학교, 방사선물리학, 미국)의 저서인 ‘코스모스’에서 동일하게 찾을 수 있다. 두 책 모두 공통적으로 독서 도중에서 발생하는 수십 번의 숙면 상태를 극복해야 읽어나갈 수 있으며, 다 읽고 난 뒤 냉철한 독후감을 쓰기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한다고 해서 우주의 신비를 다 아는 것도 아닌 딜레마에 빠져 버리는 묘한 과학 서적이다. 그래서 전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을 읽고 감명을 받았다는 것은, 그의 폭넓은 이해력을 반증하기도 하다.

 

  스티븐 호킹 박사의 베스트셀러들은 그가 가진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는 감동과 함께 대중매체를 통해 해설되고 요약되면서 세계적으로 더 알려지게 되고, 무엇보다 그의 가설과 설명으로 만들어낸 우주가 공상과학영화의 주요한 배경이 되면서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불행히도 호흡기 염증에 의해 목소리를 잃어버리면서 전자장비에 의존하며 대중과 소통하는 모습은, 오히려 대중으로부터 그의 과학에 대한 열정과 천재성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스티븐 호킹 박사는 평소 자신의 소신에 따라 지구온난화, 반핵운동 등을 포함한 반인류적인 행동에 대해 직설적으로 맞서는 모습은 대중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고, 그의 유쾌하고 밝은 성격은 최근에 미국의 인기드라마 ‘빅뱅이론’에 출연하여 더욱 진가를 발휘하기도 하였다.

 

  최근 허리우드영화, The theory of everything(한국 개봉제목: 사랑에 대한 모든 것, 감독: 제임스 마쉬, 2014년)는 스티븐 호킹 박사의 삶을 담백하게 가족 중심으로 그려나가 장애의 극복과 그것을 돕는 가족의 희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끔 하였다. 또한 이 영화는 스티븐 호킹 박사 역으로 열연한 에디 레드메인은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는 것으로 유명하다.

 

  X-선생은 스티븐 호킹이나 칼 세이건 박사에 읽을 때마다 동시대를 살았던 우리나라의 조경철 박사가 자연스럽게 생각난다. - 그리움과 안타까움으로 - 그는 1970∼80년대 태어난 한국의 수많은 어린이들에게 과학자의 꿈을 꾸게 하였고, 또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지고 영향력 있는 과학자였으며, 과학서적에서 그의 이름은 최신 과학기술 설명의 보증수표였다. 이와 같은 조경철 박사(1929.4.4.∼2010.3.6.)는 1955년 연희대학교(현재 연세대학교) 물리학과 학사를 나와 미국의 투스큘럼대학교 정치학과 석사를 진학하고, 다시 미시건주립대학교 전체물리학과 석사와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천문학과 박사학위(1962년)를 받고, 미국 해군천문대에서 연구(1962∼1965)을 했으며, 미국 NASA에서 2년간 근무한 뒤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1968년 8월에 우리 정부의 해외유치 과학자 제1호로 귀국하여 많은 활동을 했다. 특히 그는 국내에서 173권의 저서와 번역서 활동에 참여하였고, 또한 대중매체에 약 3천여 건의 기고문을 투고했다. 이 밖에도 과학대학 및 첨단연구소의 창설과 같은 일들에 매진하면서 국내 과학기술 인프라의 성장에 크게 기여한 것은 흥미로운 그의 실적들 중에 하나이다. 무엇보다 조경철 박사의 재밌는 그의 개인사는 ‘미워도 다시 한 번(1968년)’이라는 영화의 여주인공 전계현씨와 결혼도 매우 흥미롭다. 당대 가장 스타 과학자는 당대 최고의 영화배우와 결혼한 것이다.

 

< (좌)조경철 박사, (우)장명부 투수 >

 

  그러나 조경철 박사가 오로지 과학계에 헌신한 것만은 아니었다. 1978년 10대 총선에 서울 강남구의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여 3위로 낙선했고, 1981년 11대 총선에 서울 종로구의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여 4위로 낙선했다. 또한 그는 TV 예능 프로그램에 다수 출연하여 많은 인기를 얻었으며, MBC 방송사의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인연으로 코메디언 이경규의 결혼식 주례를 본 것으로도 더욱 유명했다.

 

  그의 남다른 훌륭한 행적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조경철 박사의 대표 연구나 서적을 선뜻 떠올리지 못한다. 스티븐 호킹 박사와 같은 꿈을 꾸었던 그가 조국으로 돌아와 과학의 대중화를 꽃피었지만, 그의 조국은 그가 어쩌면 더 큰(인류를 위한) 천체물리학자가 되는 길을 막았던 것은 아닐까. X-선생은 요즈음 스티븐 호킹 박사의 타계와 더불어 국내 언론들의 추모 물결을 보면서 씁쓸함을 느끼는 것은 왜 일까. 어느새 국내 많은 매체들이 그의 대표 저서를 소개하면서 국내 서점가에 베스트셀러는 금방 스티븐 호킹 박사의 책이 되었다.

 

  야구경기를 떠올려 본다. 미국의 메이저리그에서 너무나 성적이 좋은 투수를 국내로 데려와 코리아리그의 우승을 위해 매번 경기마다 그를 기용한다면, 팀은 우수하겠지만 그 투수는 무리한 투구수와 잦은 부상으로 선수 생명이 단명 될 것이다. - 이런 유사한 실제 사례는 삼미 슈퍼스타즈로 맹활약한 장명부 투수(1950.12.27.~2005.4.13)가 있다. 이렇듯 오늘날 과학자에게 국경이 존재할까. 우리의 과학정책도 이제 국가주의, 단기성과(대통령 임기에 맞춘), 노벨상 수상, 철학 없는/행정 편의적 과학기술 등을 벗어나 인류애를 가지고 연구하는 세계적인 과학자를 탄생하는 흐름으로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현 정부가 과학자를 보는 시선이 조선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느낌은 무엇일까). 스티븐 호킹 박사가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훌륭한 연구업적으로 대중에게 다가가서 인류 과학기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은 결코 개인만의 노력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연구를 지지한 사회분위기(차별과 위계 없는), 과학정책, 동료, 가족이 만들어낸 공동작품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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