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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양대학교 의과대 김천기 교수- 젊은 의사•교수의 ‘멘토’ 되어
연구역량 강화와 논문의 질적 수준 향상에 기여

    한양대학교 의과대 김천기 교수- 젊은 의사•교수의 ‘멘토’ 되어
    연구역량 강화와 논문의 질적 수준 향상에 기여

  이론보다 더 귀중한 가치는 경험자로부터 전달되는 조언이다. 그 경험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저명한 기관에서 수십 년 축적된 경험이라면 이제 막 전문가의 길에 발을 들여놓은 젊은이들에게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데 있어 귀중한 방향키가 될 것이다. 분자영상분야 세계적 전문가인 김천기 교수가 37년 미국생활을 접고 귀국길에 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본고에서는 “하버드대학교를 비롯해 미국의 여러 명문 의대에서 쌓은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국내 젊은 의사 및 교수들에게 전수해 연구역량 강화 및 논문 질 향상에 기여하고 싶어 귀국을 결정했다”는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김천기 교수를 만났다.

▶ 유학생에서 세계적인 전문가가 되기까지

  1980년 한양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미국으로 건너간 김천기 교수는 로체스터대학교(University of Rochester), 펜실베이니아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 등 미국의 유명 의료기관에서 인턴, 핵의학 레지던트, 펠로십(Fellowship)을 거쳤으며, 그 후 2017년까지 마운트 사이나이, 유펜, 그리고 하버드 의대 영상의학(Radiology)과 교수로 재직한 바 있다. 특히 김천기 교수는 미국내 한국인 1세대에서는 최초로 American Board of Nuclear Medicine의 디렉터로 활동하며 미국핵의학 발전에 이바지해 왔다.

  37년간 미국에서 분자영상 교육에서부터 환자들의 질병 진단 및 진료와 치료를 통해 미국 의료시스템의 질적 향상에 기여해 온 김천기 교수는 이백 편이 넘는 논문, 전문서적, 리뷰 집필 등에 참여했으며, 그의 논문은 수천 건의 높은 인용지수를 보이며 중요한 연구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83년 레지던트를 시작하면서 핵의학분야에서 임상연구를 접하게 되었고 매우 흥미롭다는 생각에 동 분야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김천기 교수는 “핵의학이나 분자영상학은 탐정수사나 다름없다”며 “핵의학 분자영상의 판독을 잘하려면, 해부학적인 영상들 처럼 눈에 보이는 비정상적인 것을 찾아내는 것이 우선이 아니고, 그 찾아낸 것들 모두를 연결시켜 추리를 하여 진단을 해야 하기 때문에 상상력이 풍부하고 사고의 범위와 깊이가 더 넓어야 하며, 셜록홈즈와 같은 명탐정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 37년의 타국생활, 연결의 끈을 놓지 않았던 ‘한국애(愛)’

  김천기 교수는 오랜 시간 미국에서 생활해 왔지만 국내 활동에서도 왕성함을 보였다. 91년부터 한국에 방문할 기회가 있을 때 마다 특별강연 등을 통해 여러 학교와 병원, 그리고 학회 등에서 수많은 후배의사/교수들을 교육시키고, 동료 교수들과 정보를 공유하는데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내 경험과 지식을 우리나라 핵의학을 책임질 젊은이들과 나눌 수 있어서 매우 기뻤다”고 말하는 김천기 교수는 공식적인 행사 이외에도 개인의 시간을 들여 젊은 석학들을 만나고 교류하며 인연의 끈을 이어왔다. 실제 김 교수는 한국 의학발전과 교육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모교인 한양대학교 등 국내 유수의 의학회 및 학교로부터 감사패와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 단김에 빼어진 쇠뿔, 고민 끝에 내린 결정

  하버드의대에서 9년 여간 교수로 재직하며 능력을 인정받아온 김천기 교수는 지난해 12월 1일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임명받아 작년 12월부터 한양대학교로 터전을 옮기게 되었다. “그동안 국내 대학에 적을 둘 기회가 몇 차례 있었지만 그 때마다 여건상 쉽지 않았었다”고 말하는 김천기 교수는 이번 한국행의 가능성이 지난해 3월 초 한양대병원장의 제안으로부터 처음 시작된 후 불과 몇 시간만에 학교의 승인까지 일사천리 진행 되었다고 회상한다.

  정년이 없고 노후가 보장된 미국에서의 생활을 접고 한국행을 선택하기란 적잖은 고민이었다고 하는 김 교수는 7월에 최종적으로 한국행을 결정하게 된다. 그 배경에는 ‘나눔의 실천’이 있었다. “미국에서 37년간 의대교수로서 살면서 내가 배운 지식과 알고 있는 정보들이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한국행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김천기 교수는 2017년 12월, 고국을 떠난 지 37년만에 모교에서 젊은 의학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멘토’ 역할을 시작하게 되었다.

▶ 젊은 의료진들의 ‘연구와 논문’ 분야를 지원하고 싶다

  김천기 교수는 우리나라의 의학은 세계에서도 전례가 없을 정도로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부 대학들을 중심으로 편중된 논문 발표 경향을 보면서, 비교적 덜 활발한 대학의 젊은 연구자들이 충분한 연구 자질과 능력을 갖추고도 첫 단추를 잘못 끼우거나, 혹은 우수한 연구 성과를 내고도 포장을 잘 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 들의 논문이 저평가 받거나 저널에 채택이 되어지지 않는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다고 하는 김 교수는 “그러한 젊은 의학도들이 우수한 논문을 발표하고 연구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촉매제가 되고 싶다”고 한다.

  이를 위해 김천기 교수는 많은 젊은 의학도들을 만나 그들의 애로사항을 파악하고 논문 작성을 위한 아이디어 제공에서부터 국제적 수준으로 논문이 집필되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계획이다. 또 이들 연구가 IRB(Institutional Review Board, 임상시험심사위원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돕고 더 많은 의학저널에 게재될 수 있도록 기여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김 교수는 “젊은 연구자들이 연구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저의 임상연구 경험을 후학들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덧붙여 설명했다.

▶ 젊은 핵의학 의사들과 자신의 임상경험을 공유하고 싶다.

  김천기 교수는 “미국의 전공의 교육 과정에는 임상능력 습득이 우선이고 그 후에 연구가 뒤따른다”고 말하며,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대학에서 미래를 위한 훌륭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나, 반면 당장 오늘 보는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임상/판독 능력을 키우고 교육시키는 것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한다. 김 교수는 자신이 핵의학에 몸담고 있는 동안 몸소 습득한 임상경험과 노하우를 젊은 핵의학 의사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 경험 전수를 넘어 가치공유까지

  타국에서 수학하고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간다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김천기 교수 역시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 중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과 ‘언어’의 벽이 가장 컸다고 한다. “영어를 완전히 이해하며 읽는 것은 7-8배, 논문 쓰는 속도는 20배 정도 다른 교수들보다 느렸던 것 같다”는 김천기 교수. 그는 하버드 의대를 비롯하여 미국에서 몸 담고 있던 어느 학교나 학회에서도 명강의 교수로 인정받지만 언어는 여전히 넘기 힘든 벽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연구자, 학자, 교수로 남고 싶다면 게임의 승부는 논문에서 날 것”이라며 “같은 능력을 가지고 같은 질의 높은 수준의 논문을 쓰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영어의 수준이 자국민 수준이 되었을 때 그들과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끝으로 김 교수는 젊은 의학도들에게 ‘떳떳한 의사’가 되기를 조언한다. “병을 잘 고치는 명의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이를 수 있는 한계가 다르겠지만, 돈을 벌더라도 나 자신과 환자에게 떳떳하게 버는 의사여야 한다”고 말하며, “최선을 다해 내 부모 형제를 대하는 것처럼 환자를 진단 및 치료하면, 그 것이 당당한 명의가 되는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 교수님께

    연구와 임상/판독 능력 사이 균형에 대한 김천기 교수님 말씀이 많이 와닫습니다.

    2018-03-28 15:5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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